"나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스토리텔러입니다" 초현실주의 사진의 대가 휴 크레슈머의 작업 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 《IMAGINE into the IMAGINATION》 展이 호반아트리움에서 열리고 있다. 포토샵을 통한 보정작업이 보편화 된 현대 사진 작업에서 치밀한 사전 계획과 스케치, 현장 세팅을통해 아날로그 방식의 연극적인 장치들로 독창적인 사진을 완성시키는 휴 크레슈머. 디지털과 동시에 아날로그적 방식을 접목하여 작업을 이어가는 휴는 자신의 작업을 '멀티미디어 하이브리드'라고 부른다. 뉴욕 타임즈, 내셔널 지오그래픽, GQ, 에비앙, 베니티페어 등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해온 그는 그만의 작업 세계를 인정받은 세계적인 사진작가로서, 소더비를 비롯하여 뉴욕, 파리 등 세계 유수의 전시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에 대한 오래된 경외 그리고 상업과 아방가르드를 오가는 자유로움이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지친 관객들에게 휴식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될 것이다.


  Ⓒ Hugh Kretschmer, Curious Site, 2006

호반건설은 경기도 광명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쇼핑몰 아브뉴프랑에 미술관 호반아트리움을 운영하고 있다. 호반아트리움은 호반건설의 태성문화재단에서 담당하는 곳으로 '함께' 경험하는 예술,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친근한' 공간을 지향한다. 정적인 미술관이 아닌 체험하는 예술, 일상의 작은 변화를 위한 클래스, 지식이 아닌 오감으로 배우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으로 광명시 지역 공동체와의 만남을 형성하고자 한다. 모두를 위한 문화의 정원, 호반아트리움에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발칙한 상상력과 특유의 유머를 기반으로 한 포토그래퍼 휴 크레슈머의 작업 세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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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크레슈머 회고전의 첫 번째 전시 공간은 작가의 실제 작업실을 모티프로 연출한 암실 공간으로 시작된다. 사진 인화과정에서 가장 먼저 선행되는 암실 공간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전문 사진 기구, 도구들과 작가가 콜라주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공구들을 작품과 함께 볼 수 있다. 암실 공간을 지나면 휴 크레슈머의 초기작 시리즈인 <Constructions>를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20세기 미술이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밝히곤 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다다(dada), 러시아 구축 주의, 초현실주의 회화, 입체주의 등에서 영감을 받은 사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활동 초기인 1990년대 초반에 제작된 이 시리즈는 특히 입체주의(Cubism)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Constructions>시리즈를 통해 입체주의 회화에 대한 오마주를 드러내는 동시에 사진으로 자신의 창작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시켰다. 이를 통해 작가가 사진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성과 진지함, 야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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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크레슈머의 대표작 <Blustery Day>.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는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브루클린의 길가에 나뒹구는 비닐봉지를 보고 <Bluestery Day> 시리즈 작업을 착안하게 되었다. 콜라주 형식으로 보이는 이 작업은 디지털 기법이나 포토샵 과정을 통해 완성됐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세트에서 촬영된 사진 그대로를 담고 있다. 소품과 세트를 직접 제작하는 작가의 작업 스타일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는 시리즈로, 바람에 떠다니는 연의 모습을 한 남자, 깃대에 매달려 있거나 나뭇가지에 스카프가 걸린 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 등 포토샵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완성할 수 있는 작업들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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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ge>시리즈는 작가가 12년간 뉴욕에서 활동한 후 LA로 돌아왔을 때, 기후에 대한 이상 변화를 느끼고 시작하게 된 작업이다. 비가 좀처럼 내리지 않는 상황 속, 기상청에서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폭우가 언제쯤 올지 예측해볼 뿐이었다. 이러한 이상 기후는 화재로 인한 폭풍으로 이어졌고, 작가는 이로 인해 두 번의 비상 대피를 하게 됐다. 이상 기후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한 작가는 이미지를 통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Plastic Wave>는 <Mirage>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가만의 독특한 아날로그적 촬영 방식을 적용했다. 각 이미지는 용도 변경 또는 폐기된 플라스틱을 이용했으며, 세트를 제작한 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맺힌 이미지를 얻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작가는 로버트 롱고(Robert Longo)의 목탄 도면 작업과 포토그래퍼 레이 콜린(Ray Collins) 작업에서 본 시리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세트에 사용된 모든 재료들은 재생 가능한 재활용품으로 제작하고 이미지 촬영 후 다시금 폐기되는 것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흐름이다. 이 프로젝트의 의의는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폐기된 종이와 패널, 비닐과 같은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진 검은 파도는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를 이미지의 표면을 통해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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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embly Required>(2006) 시리즈는 로스앤젤레스 매거진에 실린 기획 작업으로, 우화 형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립되기 전 마네킹의 모습으로 각각의 상자에 담긴 남자와 여자<Special Delivery>는 이후 조립되어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봄을 부르는 패셔너블한 의상으 로 각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Eating Alone>, 각자 자신의 강아지 인형과 함께 산책을 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자와 여자는 우연히 같은 옷 가게 쇼윈도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 사이 강아지 인형들끼리 사랑에 빠진다<Curious Site>. 이것을 인연으로 남자와 여자도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다<Together at Last>. 아무 감정도 없어 보이는 무표정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데이트하는 독특한 과정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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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ox Party>는 성형수술에 민감한 현대 여성들의 군상을 연극적인 구도와 연출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휴 크레슈머가 사진작가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사회적인 이슈를 담고있으면서도, 특유의 소름 돋는 듯한 유머가 묻어나는 블랙코미디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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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으로 구성된 <Gastronopolis>(1998) 시리즈는 작가가 유년 시절 경험했던 '우주 전쟁' 시대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담은 한 편의 흑백 필름처럼 이루어져 있다. 수년간 탄탄하게 준비한 이 시리즈는 휴 크레슈머가 사진이라는 장르에 서사를 도입한 첫 개인 작업으로, 초기 작업인 시리즈의 입체적인 정물 표현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지구의 도시에서 적응하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외계인의 절망과 욕망으로 인해 도시를 먹어 삼킨다는 다소 황당한 스토리는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감독 프리츠 랑(Fritz Lang, 1890-1976)의 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가 자라난 1960-70년대는 전 인류가 달 정복 이슈로 들떠 있던 시기로, 유년 시절 달 착륙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작품에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초기 작업임을 감안할 때, 그의 예술 표현 방식에 대한 넓은 지평과 뛰어난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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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ugh Kretschmer, Female CEO, 2002

<Dream girls>시리즈에 등장하는 작업은 카테고리명이 지칭하듯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Female CEO>(2002)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 CEO는 희귀한 존재라는 의미로 자연사 박물관 내에 전시품으로 설치된 상황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휴 크레슈머의 <Man Problems>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남성들이 직면하는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적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업들이다.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일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 내면의 고통, 나아가 인류 공통의 문제까지도 초현실주의 회화 형식에 빗대어 유머러스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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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Korea Project>시리즈를 제작했다. 휴 크레슈머에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고모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과 일본의 예술품 컬렉션이고, 두 번째는 TV를 통해 접했던 아시아의 문화다. 이번 한국 시리즈는 아트리움의 의뢰로 이루어졌으며, 한국의 전통 민속 문화에 대한 이미지와 유년시절 그가 접했던 만화 이미지가 혼합되어 작가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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